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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비 내리는 날 2월은 꿈틀거리는 탈피를 꿈꾸는 번데기인 것 같다. 겨울인 듯 겨울이 아닌 봄인 듯 봄이 아닌 비가 내리는 바깥세상은 왠지 모르게 봄기운을 느낀다.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그윽하고 담담하고 냉철하고 빼어났네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을 못 벗어나는데 해탈한 신선을 맑은 물에서 정말로 보는구나" -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는 겨울이 지나는 제주의 들판 여기저기에 하얀 꽃을 피우는 제주 수선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어릴 적 나도 수선화를 좋아했다. 이맘때쯤 길가에는 수선화가 여기저기서 피어난다. 바람이 불면 피부로 쌀쌀함이 느껴지는 계절인데도 굵은 진초록 줄기와 잎줄기 사이로 피어난 노란색과 하얀색 꽃잎은 너무도 싱그럽고 뿜어내는 달콤한 향기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내 마음을 녹여 주는 듯하다. 시골소녀.. 2023. 2. 19.
2월 14일, 오후 오랜만에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여 어디선가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봄이 오기는 오나 보다. "내 일생은 충실히 보낸 하루와도 같았다. 삶이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랜마 모지스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삶에 지친 나에게 할머니가 곁에서 위로를 해주는 것같이 마음이 따스해지며 포근해진다. 버지니아 주 시골 마을에 살았던 모지스 할머니는 가난했던 시절, 사랑하는 자녀들의 죽음, 남편과의 사별, 평탄하지 않은 모진 삶을 이겨내고 일흔이 넘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린 그림을 마을 장터에서 팔아서 생계에 보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23. 2. 14.
2월 11일, 저녁 어제는 직원 회식날이었다. 날 잡고 내려오신 대표님, 과장님과 함께 우리 매장 직원들이 함께 했다. 1차는 돼지갈비 집에서, 참이슬, 카스... 2차는 이자카야에서, 소주파인 대표님과 노아님은 진로 원샷, 나머지 직원들은 산토리 위스키 잔에 담긴 하이볼.... 난 대표님 권유에 못 이겨 사케 마루 따뜻하게 딱 한잔. 직원들은 분위기에 휩싸여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저마다 목소리가 커지고 즐거워한다. 그 모습들이 나에겐 사랑스럽게 비친다. 회식을 하면 난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니, 못 마신다. 다들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 줘야 내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사실 난 술을 좋아한다. 술을 마시면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술은, 내가 편안한 시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 2023. 2. 11.
2월 9일, 할아버지 제사 할아버지 제사라고 한다. 제사상에 올릴 찐빵 한 상자를 사고 달렸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난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이고, 내가 중학교 1학년때 돌아가신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의 소중한 가족. 할아버지 제사에 가는 건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러 가는 이유가 확실한 날이다. 일상이 바쁘다고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거리를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고 있지만, 아버지랑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더없이 행복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느껴진다. 우리 집안은 친척도 별로 안 계시고 제사라고 해도 항상 조촐했고, 조용했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즐거운 날이었고, 나이가 들면서는 집안일이 많은 약간의 성가신 날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 2023. 2. 9.